보험 이야기만 나오면 저는 늘 조심스러워집니다. 주변을 보면 좋은 설계사님을 만나서 필요한 보장을 잘 챙겨가는 분들도 분명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저는 과거의 어떤 기억 때문에 사람을 통하기보다는 혼자서 다이렉트 상품을 찾아보고 가입하는 편을 마음 편하게 느끼곤 합니다.
모든 것은 한 명의 보험 설계사가 저희 어머니에게 남긴 상처 때문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글을 잘 모르십니다. 그 설계사는 저희 어머니에게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여러 개의 보험 상품을 가입 시켰습니다. 심지어 자동차도 없는데 운전자 보험까지 가입을 했더군요. 더 놀랐던 사실은 가입 서명란에 어머니의 필체와는 다른 누군가의 사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만약 이 사실을 모른 채 나중에 보험금을 청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본인 사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이 거절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저는 어머니를 대신해 가입했던 보험들을 모두 해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까지도 충분히 힘든 경험이었지만, 그 설계사의 악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높은 이자를 주겠다는 말로 다시 어머니에게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10년 전, 어머니는 그 사람에게 2,000만 원이라는 정말 큰 돈을 빌려주셨습니다.
처음 두어 번은 약속대로 이자를 주더군요. 하지만 거기까지 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이자는커녕 연락마저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제가 어머니를 대신해 그 사람에게 연락해 원금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그는 돈을 빌린 사실이 없다며 딱 잡아 뗐습니다.
너무나 황당하고 억울해서 어머니를 대신해 차용증을 근거로 법적인 절차를 밟아 통장 압류까지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그 사람이 이미 변제할 능력이 전혀 없는 상태라는 차가운 현실이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힘들게 모은 소중한 돈을 돌려받지 못하셨습니다.
한 사람에게, 그것도 글을 모르는 약한 사람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두 번이나 기만적인 행동을 하고 금전적인 피해까지 입히는 것을 직접 겪고 나니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습니다. 보험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어머니가 겪으셨던 아픔과 저의 무력감이 되살아나 트라우마처럼 남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보험을 알아볼 때 누군가를 통하기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스스로 상품을 비교하고 결정합니다. 이것이 소중한 저희 가족을 비슷한 불행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저만의 최선의 방법이 되었습니다.